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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33

스물세살의 수채화 6. 첫날 늦은 아침을 먹고 여전히 지각하는 집 앞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드렸다. 남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와서 동생들로부터 교회 갔다 왔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오후에 잠깐 성모 병원에 근무하는 친구 선아를 만나 시내까지 걸어갔다가 서점에 가서 계간으로 나오는 미술잡지를 사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만나서 옷가게를 뒤지고 선아의 남자 친구 이야기에 주변에 있는 동창들 이야기를 나누거나 잡다한 일상사를 나누는 대학 때 절친. 지난해부터 선아에게 남자 친구가 생기는 바람에 이야기 도중에 화제의 한계가 생기거 선아가 절제하는 언어의 벽에 부딪치고는 한다. 영숙이의 솔직성은 병적이라고 할까? 상대 편에서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말을 안 하고 참는다든지 대화에 한계선을 긋는다 할 때에는 불투명한 불쾌감을 느끼고는 한.. 2022. 8. 14.
스물세살의 수채화 5. 청자의 완성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올라가서 쌀 한주먹을 솥에다 올려놓았다. 방에 들어가서 책을 읽다가 비록 반찬은 김치와 고추장과 참기름뿐이었지만 방금 지은 따스한 밥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 점심상을 치우고 마루 끝에 앉아 따스한 햇볕을 쪼이면서 처마 끝에서 낙수가 떨어지는 모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탄재가 부엌 옆에 나 앉아 있는 모양을 가늘어진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데 안방에서 누군가 빠꼼이 문을 연다. "희영이 아니니?" "밖에 안 나갔었어?" "예 재미없어서 들어왔어요." "영재는 어디 갔는데?" "애들하고 초등학교에서 놀아요." "너 심심하겠다." "좀 심심해요." 희영이와 마루 끝에 나란히 앉아서 닭 한 마리가 마당을 가로질러 빈 헛간으로 가서 헤집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곳 처마에서도 낙수.. 2022. 8. 13.
스물세살의 수채화 4. 출발 보건지소에 발령 받은 다음날 아침. 출근하여 면사무소에 가서 출근부에 도장을 찍고 사무실 청소를 끝내고는 창문 앞에 서서 창밖을 내다보고 서 있었다. 웬 반바지를 입은 뚱뚱한 남자가 면사무소 정문으로 들어서면서 안경 낀 눈으로 보건지소를 쓱 쳐다보더니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들고는 쩔걱거리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안경 속으로 쌍꺼풀이 크게 떠오른 눈. 털이 숭숭 나온 반바지. 낯선 여자의 시선 때문인지 부자연스럽게 현관을 지나서 이쪽 가족계획실 문을 열고 고개를 쓱 디민 자세로 물어본다. " 어떻게 오셨어요? " 사무실 문턱에 고개를 부딪힐까 봐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고 있는 그 커다란 사람을 향하여 "어제 발령받고 왔는데요! " 영숙이는 일어서서 책상 모서리를 꼭 붙잡고 대답을 하였다. "아! .. 2022. 8. 12.
스물세살의 수채화 3. 로맨스 영숙이와 윤선생님은 보건지소 사무실 뒷쪽 창문 앞에 나란히 서서 퇴근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여름에 이곳에 근무하시던 이 선생님이 상추를 심어 놓았던 곳은 이제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영숙이가 가을이 되면서 긴 머리를 잘랐던 것처럼, 면사무소 용인 아저씨가 화단의 풀과 시든 상추를 전부 뽑고 정리했다. 저녁 안개가 조용히 나래를 펴고 사무실 주위에 내려앉는다. 영숙이는 초록 원피스 주머니에 호두를 만지작 거린다.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하실까? 옆에 서있는 윤선생님의 옆얼굴을 올려다보니 묵묵히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회색 양복에 같은 빛깔의 얼굴을 하고 창문 밖을 보고 있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읽을 수가 없다. 영숙이도 말없이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나무 울타리에 마지막 남아 있.. 2022.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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