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409 나팔꽃 우산 (김채영. 수필가. 처용수필 제2호 1996. 겨울) 딸애를 마중하기 위해 우산을 챙기다 창고 속에서 생소한 우산 한개를 발견했다. 아, 이 우산도 있었지! 얼마전 친정어머니에게 물려 받은 우산이다. 평소 어머니가 아끼던 우산이라 한사코 사양했지만 새 것이 아니라 그러냐기에 받지 않을 수 없었던 우산. 알록달록한 격자 무늬가 새겨진 어머니의 우산은 손잡이 장식이 꼭 마음에 든다. 탄탄한 나무로 섬세하게 새겨진 목각인형이 품위를 더해준다. 얼핏보면 새 우산 같지만 우산을 받쳐주는 대의 관절이 누르무레하게 녹이 슬어있어 십 년이라는 세월을 말해주는 듯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몸이 불편하셔서 거의 우산을 쓴 적이 없으니, 꽤나 정갈한 편에 속했다. 어머니는 애당초 우산을 쓴다는 것은 사치일 정도로 고단한 삶에 .. 2020. 11. 7. 들꽃 (김종한. 북정신용협동조합 이사장 직무대행. 처용수필. 제2호. 1996. 겨울) 내 고향은 첩첩으로 산이 둘러진 곳이였다. 하늘만 훤히 틔여있고 온통 녹음이 에워쌓는 마을은 녹색포장의 자연 그대로의 심산유곡일 뿐이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그날부터 소를 돌보는 당번은 내 일과다. 풀밭으로 소를 몰아내면 풀어둔체 나는 잔디에 누워 책을 읽었다. 귀가길의 내 팔굽 밑에는 독파된 책이 끼워져 있었다. 책장의 몇군데 빨간줄을 친 명구절이 선택되기도 했다. 마음속으로는 오늘 읽어 낸 책보다는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상상의 환상에 젖어 노벨 문학상을 몇년안에 받을 것만 같았다. 동구밖 산을 따라 황혼이 한폭의 풍경화를 이루고 있었고 저녁연기 피어오르는 마을로 소달구지에 짐이 실려 들어오고 있었다. 밤하늘에는 .. 2020. 11. 6. 박꽃 (김종한. 북정신용협동조합 이사장 직무대행. 처용수필. 제2호. 1996. 겨울) 나는 박꽃을 좋아한다. 박은 넝쿨도 좋고 꽃도 좋고, 그리고 열매가 더욱 좋다. 내가 박꽃을 좋아하게 된 동기는 사십년 전이다. 중학교에 입학하자 문예반원 모집이 있었다. 나는 소설을 쓰고 싶어 지원을 했다. 국어과 담당이신 윤영준 선생님이 나의 문학을 눈뜨게 하셨고 항시 박과 인간생활을 비유하시고 우리 민족을 결부해 말씀하시며 내 문학수업도 박이 여물어 가듯이 알차게 굳으라고 수차 일러 주셨다. 그때부터 나는 박을 좋아하고 박에 관심을 두었다. 이 글의 내용에는 윤선생님의 말씀이 많이 삽입되어 있다. 선생님을 한번 뵈올수 있으면 한다. 한마디의 교훈이 한 사람의 진로와 마음의 자세를 결정한 힘이라면 얼마나 맑고 밝고 참된.. 2020. 11. 5. 양초 한자루가 밝혀주는 세상 (김인숙. 울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처용수필 제2호. 1996. 겨울) 혜전이가 여섯 살이었을 때의 일이다. 일이 있는 엄마라 저녁에 빠질 수 없는 모임이 있으면 같은 아파트의 옆 동에 사는 이모에게 아이를 맡겨 놓곤 하던 때이다. 늘 옆에 끼고 씨름하면서 사는 엄마들과는 처지가 달라서, 아이가 그냥 잘 놀고 있어도 괜히 마음이 아프고 그 또래의 아이들이 다들 가는 유치원에 보내면서도 꼭 못보낼 곳을 보내는 것처럼 뒤가 돌아보아지는 터였다. 그래서 엄마같은 큰 이모와 재미있게 잘 지내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저녁 시간에 아이와 함께 집에 있어 주지 못하는 것이 모임 내내 마음이 쓰였다. 조급한 마음에 앨리베이터가 느린 것을 탓하며 초인종을 울렸다. 호호호 까르르 하며 다가오는 웃음 소리와 함께 문이 .. 2020. 11. 4. 이전 1 ··· 43 44 45 46 47 48 49 ··· 103 다음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