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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홀로선 버드나무48

< 홀로 선 버드나무 > 24. 탄생과 전매청 용인 아저씨가 간 밤에 무릎까지 빠지도록 쌓인 눈을 쓸고 있다. 선생님은 서울에서 아직 안 내려오셨고 영숙은 사무실 청소를 마치고 창문 앞에서 용인 아저씨가 눈 쓰는 것을 구경했다. 겨우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의 길을 내었을 때 눈만 내놓고는 모자까지 푹 뒤집어쓴 사람이 면사무소 문을 지나 곧바로 보건지소를 향해 걸어왔다. " 어떻게 오셨어요? " " 저 여기 안양 있지요? " 보건지소 현관 앞에서 모자를 벗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는 아저씨를 보고 안양이 반가운 소리를 한다. " 아니, 웬일이세요?" " 안녕하세요? " " 그래, 신양은 잘 있어요? " " 아, 예, 실은 애기 났어요! " " 아기 낳았어요? 딸? 아들? " " 아들이에요! " " 아유 잘됐네요. 이제 아들 .. 2020. 1. 10.
< 홀로 선 버드나무 > 23. 눈이 주는 행복 창 밖으로 하얀 눈이 소담스럽게 쌓였다. 면사무소로 사람들이 등을 바짝 조여 안은 체 종종걸음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가끔 시야를 잠식할 뿐. 모든 것은 반짝이는 색으로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다. 눈이 그친 뒤의 그 고요함. 햇볕이 내리쬔 듯한 그 맑음.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가진 것 없어도 곧 사그라져 버릴지라도 눈의 모습을, 진정함 그 참모습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갑자기 눈의 예찬을 하다니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밟으면 뽀드득 소리 나는 저 눈처럼 내 마음은 반짝이지도 맑게 개어 있지도 아니하고 텅 비어 있을 뿐이다. 눈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눈 내리는 모습을 보고 내린 눈을 본다는 것은 쓸쓸하다고나 할까? 소슬하다고나 할까? 면사무소 벽 한 귀퉁이에 작은 햇.. 2020. 1. 9.
< 홀로 선 버드나무 > 22. 순진 컨셉 영숙은 이즈음 간간히 통증이 오는 오른쪽 가슴과 한두 번 나오는 기침에 왠지 모를 불안을 느낀다. 불안. 자신이 환자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정말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하얀 밤톨 속의 하얀 벌레처럼 자신의 생명을 조금씩 파먹고 있는 벌레. 바람 한가운데서 영숙은 바람이 더 세게 부는 소리를 듣는다. 영숙은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가슴속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를 듣고 있었다. 불과 몇시간 전 수경이에게 한턱냈던 일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집에서나, 미장원에서 머리 할 때나, 아는 아저씨를 만나 몇 잔의 술잔을 홀짝이고 나이트에서 춤을 출 때에도 수경이는 자신의 순진을 자부했고 실제로 순진해 보였다. 순진해 보이는 것이 특기인 순진파 형 아가씨. 수경이가 영숙이를 두려워하는 것을 알고 있다. 3년 동.. 2020. 1. 8.
< 홀로 선 버드나무 > 21. 따스한 겨울 겨울은 여전히 따뜻하기만 했다. 아마도 시간의 흐름을 잊어버린 모양이거나, 밀려 버린 시간 때문에 겨울이 지난봄에나 추워지려나.. 유난히 따뜻하고 포근한 겨울. 영숙이는 무엇인지 잘 알 수 없지만 어렸을 적 외갓집에서 외 할아버지가 소리 하시는 것을 들으며 따뜻한 아랫목에 아슴히 잠들 때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아늑하고 기분 좋게 무엇인가가 영숙이를 감싸 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창 밖으로 조용히 눈이 내려 온다. 하늘하늘. 영숙이는 창 문 앞에 서서 초록색 원피스 양쪽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생상스 첼로 협주곡 1번( Saint - Saens - Cello Concerto No. 1)을 듣고 있었다. 영숙이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섬세하게 떨려 나오는 고은 음색이 창 밖의 눈과.. 2020.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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