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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life of Jinnssam

by 영숙이 2022.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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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 life of Jissam>


1. Jinnssam 이야기


드디어 교사가 되어 월급을 탔다.
월급을 타고 선배인 문선생님이랑 시내를 나갔다.

울산에서 시내란 40년전에는 옥교동을 말했다.
지금도 옥교동은 학생들이 모여서 오락도 하고 몰려 다니면서 놀기도 하는 장소이기는 하다.

요즘은 울산에서 시내라고 하면 롯데백화점이 있는 삼산동을 의미한다.
40년전에는 가게나 음식점이 옥교동에만 있어서 회식을 할 때에도 옥교동으로 가야했다.

지금도 기억난다.
함께 시내에 간 문선생님이 말했다.

"너네 집 못사니?"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돈을 안써서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돈을 안쓴게 아니라 쓸줄을 몰랐었다.

"뭐 살거 있어?"
"뭐 사러 갈까?"
"금은방에 가고 싶어요."

문선배가 금은방에 데리고 가서 Jinnssam은 월급으로 금목걸이와 금으로 된 목걸이에 끼울 알을 샀다.

월급의 1/3쯤 쓴거 같다.

"금목걸이 왜 샀어?"

"투자 차원에서 샀어요."
"첫월급 타서 저축도 안하고 그냥저냥 다 쓰는게 아까워서요."
"라듸오 없잖아."
"라듸오라도 사."
"네."

그렇게 라듸오를 샀다.
지금 같으면 문선배한테 금은방에 갔으니 목걸이를 2개 만들어서 하나는 선물했을텐데 그때에는 그런 생각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참 어릴 때부터 투자개념이나 저축개념이 독특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객지 생활을 했지만 여선생님들은 거의가 다 울산 토박이에다가 있는 집 자식들이었고 명문 대학을 나온 여선생님들이었다.

특히 나이든 여선생님들 눈에는 하찮게 보였을 것이다.

Jinnssam도 나름 자부심도 있고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을 하는 자뻑 스타일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나 기본적인 정서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하루는 심심해서 옥교동 시내에 있는 상가에 가서 노오란 가방을 하나 샀다.
시장에서 나름 이뻐보여서 미색 줄에 미색으로 된 가방을 사서 다음날 학교에 들고 갔다.

책상 위에 올려 놓았는데 토박이 여선생님들의 수장인 기선생이 책상위에 놓여 있는 Jinnssam의 가방을 보더니 큰소리로 ㅎ ~ ㅎ ~ ㅎ

"애걔 Jinnssam 가방좀 봐라"
"ㅎ ~ ㅎ ~ ㅎ"

가소롭다는 듯이 교무실에서 박장대소하면서 손가락질을 하고 다른 여선생님들한테 대놓고 비웃었다.
너무 부끄러워서 다시는 그 가방을 학교에 들고 가지 못했다.

자취방 벽에 걸어놓고 자신이 번 돈으로 처음 샀던 그 가방을 관상용으로 사용했다.

잘사는 부모덕에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사립학교 교사로 온 기선생은 가죽가방이나 가죽신발이 아니면 신지 않았던 분이었다.

거리가 300미터도 안되는 공업탑 로터리까지 택시타고 다니는 분이셨다.

남편은 같은 학교 같은 학과인 국어과 출신으로 캠퍼스 커플이었는데 무직이었다.

아이가 3명이었나?

집안 살림은 물론 아이들 키우는 것도 그때에는 있는 집에서는 식모를 두었었는데 식모를 2명씩이나 들여서 해결하시는 분이었다.

학교에 여선생님들은 두부류로 갈라졌다.
토박이 여선생님들과 객지에서 온 선생님들.

홍선생님을 수장으로 외지에서 흘러 들어온 선생님들과 기선생을 수장으로 한 토박이 선생님들.

두 부류는 절대로 섞일 수 없었다.

외지에서 흘러 온 샘들은 월급으로 생활하면서 저축도 하고 알뜰하게 생활하는 부류였다.
토박이 분들은 월급은 용돈 정도로 쓰는 부류였다.

노골적으로 편을 가르지는 않았지만 밖에서 모일 때에는 그렇게 편을 나누어서 모임을 갖고는 하였었다.
Jinnssam은 절대로 토박이들 사이에 낄 수 없는 사람이었다.

새로 샘들이 오면 기선생은 어떤 사람인가 탐색해서 자기들 틈에 끼워줄까나 아니면 밀어낼까나를 결정했다.

돈을 쓸줄 모르던 Jinnssam이 새로 시장에서 옷을 사입고 가면 노골적으로 표정을 드러내놓고 비웃었다.

"Jinnssam은 좋은 옷을 입으면 괜찮아 보이는데 싸구려 옷을 입으면 영 사람이 구려보여."

그 시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들 양장점에서 옷을 맞춰 입었었다.

시장에서 산 싸구려 기성복을 입은 Jinnssam이 하찮게 보였을 것은 당연하다.

점심 도시락은 자연스럽게 편을 갈라 모여서 먹고는 하였다.
기선생님을 비롯한 샘들은 맛있는 걸 싸가지고 와서 휴게실에서 자기들끼리만 나누어 먹고는 했다.

일부러 모이지는 않았다해도 기선생님 마음에 드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때 먹을 것을 가지고 왔고 그러면 Jinnssam을 비롯한 홍선생님 파는 슬쩍 그 자리를 피했었다.

기선생님은 자기가 좋아하는 선생님에게만 말을 걸었고 외지에서 온 선생님한테는 자기가 필요할 때 외에는 말도 걸지 않았고 투명인간 취급을 하는 편이었다.

일부러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기선생님의 눈에 이뻐 보이는 사람만 기선생님 눈에 보였을테니까.

또래 여선생님들도 자연스럽게 두부류로 나뉘었다.
토박이 층과 외지 샘들로 나뉘었지만 또래라서 어쩌다 한번씩 모여서 시내에 나가기도 하고 밥도 먹었다. .

그때 주로 Jinnssam은 동갑인 상과 이선생과 많이 어울렸다.
Jinnssam은 수업이 없을 때에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으면서 보내던지 아니면 이선생의 타자반에 가서 타자를 치면서 보내고는 했었다.
덕분에 그때 시집을 발표하시고 이미 시인이셨던 음악과 하선생님이 말씀하셨다.

"Jinnssam이 우리 학교에서 책을 제일 많이 읽는 것 같아요."

책을 실컷 읽고 싶어서 도서관이 있는 학교에 선생님이 되려교 했는데 시간이 날때마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거나 또 빌려서 읽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 학교에서 책을 마음껏 읽었던 일이 제일 행복한 일이었다.
시간이 날때마다 타자실에서 타자로 글을 쓰는 것도 너무 행복한 일이었다.

동갑네기 여선생님들끼리 만나서 놀기도 했지만 친해지지는 않았다.
동갑내기 선생님들 중에 대단한 미인이 한 사람있었다.
이선생, 지선생, 미인인 차선생, Jinnssam 이렇게 모여서 시내에 가서 저녁을 먹고 걸어가면 차선생 때문에 지나가던 젊은 남자들이 고개를 돌려서 어디까지나 뒤돌아보고는 했었다.

거기까지였었고 외지인은 외지인인채 그렇게 79년도를 담임을 하느라, 적응을 하느라 정신없이 보냈었다.

지금도 Jinnssam은 명품을 잘알지도 못하
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어떤 샘이 명품가방을
좋아해서 명품가방을 농속에다 열몇개를 좌악 세워놨다고 자랑하는 소리를 들은적이 있다.

  "왜 그렇게 살까?"
  
워렌버핏은 10달러 우리 돈으로 14000원 정도의 돈도 아껴서 투자한다고 했다

우리는 워렌버핏보다
부자일까?

예수 믿고 나서는 그전
에 샀던  브랜드 가방
조차도 안들고 다녀서
장롱속에서 가죽이 납작 쭈글 ~ 쭈글 ~

딱 한번 기도 한적이 있다.

  다른 사람이 들고 있는 명품가방을 바라보다


"하나님 짜가라도 좋으니 명품가방을 갖고 싶어요."

왜 그런 기도를 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한번 기도하고 잊어버렸다.

  어느날 수업 끝나고 행정실에 갔더니 카드를 만들면 짜가 명품가방을 준다고 한다.

카드를 만들고 짜가 명품가방을 받았다.
      
그런데 진짜 명품 가방인줄 알고 어디 내려놓으면 슬쩍 하려는 친구들이 매번 붙었다.

신경쓰여서 선교여행
가서 아이들 책가방
으로 내려 놓고 왔다.

  얼마나 홀가분한지.

명품도 아무나 드는게 아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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