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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41

스물세살의 수채화 27.눈이 주는 행복 창 밖으로 하얀 눈이 소담스럽게 쌓였다. 면사무소로 사람들이 등을 바짝 조여 안은 체 종종걸음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가끔 시야를 잠식할 뿐. 모든 것은 하얗게 반짝이는 색으로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다. 눈이 그친 뒤의 그 고요함. 햇볕이 내리쬐는듯한 그 맑음.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곧 사그라져 버릴지라도 눈을 그 참모습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눈의 예찬" 갑자기 눈을 예찬하다니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밟으면 뽀드득 소리 나는 저 눈처럼 내 마음은 반짝이지도 맑게 개어 있지도 아니하고 텅 비어 있을 뿐이다. 눈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눈 내리는 모습을 보고 내린 눈을 본다는 것은 쓸쓸하다고나 할까? 소슬하다고나 할까? 면사무소 벽.. 2022. 9. 4.
스물세살의 수채화 25. 따스한 겨울 겨울은 여전히 따뜻하기만 했다. 아마도 시간의 흐름을 잊어버린 모양이다. 밀려 버린 시간 때문에 겨울이 지난봄에나 추워지려는가보다. 유난히 따뜻하고 포근한 겨울. 영숙이는 무엇인지 잘 알 수 없지만 어렸을 적 외갓집에서 외할아버지가 소리하시는 것을 들으며 따뜻한 아랫목에서 아슴히 잠들 때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아늑하고 기분좋게 무엇인가가 영숙이를 감싸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창 밖으로 조용히 눈이 내려 온다. 하늘하늘 ~ 영숙이는 창문앞에 서서 초록색 원피스 양쪽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생상스 첼로 협주곡 1번( Saint - Saens - Cello Concerto No. 1)을 듣고 있었다. 섬세하게 떨려 나오는 고은음색이 창밖의 눈과 어울려 따뜻한 실내를.. 2022. 9. 2.
스물세살의 수채화 24. 풍성한 눈 푸짐한 눈 내리는 소리. 눈을 받아들일 준비가 없는 영숙이에게는 정말 쓸쓸하고 차갑기만 한 눈발들. 창 밖에는 여전히 바람 소리가 몰려다니고 홀로 선 아름드리 버드나무에 그 긴 가지들이 바람에 맞추어 눈송이 사이사이에서 춤을 춘다. 창문 앞에서 영숙이는 여전히 가슴을 앓으면서 무엇인가 목마르게 기다리며 서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가슴으로 텅 비어 쓰라린 가슴으로 자신의 작은 숨소리를 듣는다. 저쪽 길로 잔뜩 웅크린 선생님의 모습이 나타났다. 땅을 보며 급히 걷는 걸음으로 면사무소 문을 들어서서도 이쪽은 바라볼 생각도 안 하고 여전히 땅을 내려다보며 걷는다. 그 모습을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며 미소 짓고는 돌아서서 영숙이는 책상 앞에 가 앉았다. 책을 들고 이쪽 사무실로 건너온 선생님.. 2022. 9. 1.
스물세살의 수채화 23. 화해 보건소 차로 보건소 소장과 보건소 치료실 사람들 그리고 곽양 하고 안양도 집에 간다면서 가버렸다. 보건지소에 윤선생님과 영숙이만 내려놓았다. 진료실 난롯불이 꺼져서 윤선생님은 가족계획실로 건너와 유리 창 앞에서 어슬렁거렸다. 영숙이는 난로 앞에 의자를 끌어당겨 놓고 구두와 핸드백을 콜드 크림으로 닦기 시작했다. ~ 뭐라고 말을 한담.~ 말을 꺼내려하니 막상 할 말이 없다. 묵묵히 구두를 닦으며 무슨 말을 꺼낼까 생각해 본다. 늦가을 비가 멈춘 창밖이 차츰 흐릿하게 회색으로 변하여 간다. 영숙이는 난로 불에 빨갛게 익은 얼굴로 창 앞에 서있는 윤선생님 의 완강한 뒷모습을 바라다본다. 창밖에는 늦가을 바람 속에 버드나무의 긴 가지가 부드러운 머리 카락처럼 흩날리고 있다. "사실은 ~ 그 말때문이.. 2022.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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