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김형석(교육자) ~ 102세>
출처 : 나무위키(2021-10-02)
인문과학 교수
한국 남성 작가
대한민국의 개신교 신자
1920년 출생 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송산리 출신 인물
실향민
조치대학 출신(창덕소학교, 평양숭실중학교, 평양제3공립중학교, 조치대학(철학과)
연세대학교 재직(명예교수)
1. 개요
대한민국의 수필가 및 철학자이자 연세대학교의 명예교수이다.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시카고 대학교 및 하버드 대학교 연구 교환 교수를 역임했고 오스틴 대학교에 출강하기도 했다.
2. 생애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출생한 뒤 숭실중학교에서 윤동주와 함께 도산 안창호를 사사(師事)하였고, 1944년 일본의 명문사립대 중 하나인 조치대학 철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해방 후에 북한 지역에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월남하여 1947년부터 중앙고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6.25 전쟁 종전 후에는 해외유학을 가서 공부를 더 하고 싶어했으나, 당시는 전후 혼란기로 해외유학을 가기가 쉽지 않던 상황이었기에 뜻을 접어야 했다고 한다.
1954년에 연세대학교 초대 총장을 지낸 백낙준의 권유로 연세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이후 1985년에 정년퇴임할 때까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한다.
정년퇴임한 이후에도 100세를 넘긴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3. 베스트셀러 작가
학문적 업적을 떠나 꾸준히 다작을 하고, 많은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 저술가로 더욱 유명하다.
그가 본격적으로 책을 펴낸 시발탄은 1960년에 출간된 수필집 《고독이라는 병》이었다.
여러 잡지에 발표한 글을 모은 것인데, 당시 유명 잡지사 중 하나이던 삼중당(三中堂)에서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당시로서는 상당한 수였던 2만부가 팔려 파문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어 1961년에는 하버드 대학교에 연구교수로 가기 전에 넘긴 원고로 《영원과 사랑의 대화》라는 수상집이 나왔는데, 이 작품도 간행 1년만에 8만부(현재까지 누계 60만부)가 나가는 공전의 히트를 치게 된다.
그 이전에는 1938년 박계주의 《순애보》가 1년만에 4만부가 팔린 것이 베스트셀러 기록이었는데, 약 20년만에 이 기록을 깬 것이라고 한다.
이로 인해 연구교수에서 돌아온 이후 김형석 교수는 출판업계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엄청난 러브콜을 받게 되었으며, 이후 30년 이상 매년 1권 꼴로 꾸준히 책을 냈다.
그가 집필한 수필은 기독교적 실존주의를 배경으로 현대의 인간 조건을 추구하여 부드럽고 시적인 문장으로 엮어 독자들에게 감명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 《고독이라는 병》(1960), 삼중당
- 《영원과 사랑의 대화》(1961), 삼중당
- 《그대여 이날을 헛되이 보내려나》(1985), 세종출판공사
-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하여》(1988), 자유문학사
- 《그대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1990), 자유문학사
- 《그래도 인생은 선하고 아름다운것》(1990), 자유문학사
- 《나는 사랑한다. 그러므로 나는 있다》(1991), 철학과현실사
- 《인생, 소나무 숲이 있는 고향》(1991), 철학과현실사
- 《망치들고 철학하는 사람들》(1995), 범우사
- 《모든 자녀들에게는 꿈이 있다》(1998), 철학과현실사
- 《철학의 세계》(2002), 철학과현실사
- 《나의 인생 나의 신앙》(2012), CLC(기독교문서선교회)
- 《우리는 무엇으로 행복해지나》(2016), 프런티어
- 《어떻게 믿을 것인가》(2016), 이와우
- 《백년을 살아보니》(2016), 댄스토리(Denstory)
- 《행복 예습》(2018), 댄스토리(Denstory)
4. 기타
1920년생으로 현재 101세이지만 연령에 비해 매우 건강하여 강연을 비롯한 여러 활동들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
100세의 연령이라는 점을 활용하여 책을 낼 때에도 100년이라는 숫자를 쓰기도 하고 100세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불과 몇 년까지만 해도 보조수단 없이 선명한 목소리와 발음으로 강의를 했던 것을 보면 건강 상태가 놀라울 정도이다.
동갑인 백선엽과 한 살 아래인 신격호가 2020년에 사망했지만 굉장히 장수했다고 느껴지는데 정말 건강한 셈이다.
규칙적인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 그리고 절제와 노력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 나이로 102세가 된 2021년에도 동아일보에 칼럼도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으며, 스스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외부 활동을 소화할 정도이다.
2021년 1월 14일에는 KBS 아침마당 생방송에 출연하여 담화를 나누는 모습이 나왔는데, 휠체어는 물론 지팡이조차도 사용하지 않고 걸어나와 혼자 앉아서 웃으며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것을 보면 정정하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정도이다.
참고로 놀라운것은 지금은 돌아가신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과 김수환 추기경, 이희호 여사보다도 연상이다.
윤봉길 의사와 12살 차이고, 박정희 대통령과 3살 차이다.
슬하에 2남 4녀의 자녀를 두었다. 맏아들은 한림대 철학과 명예교수 김성진(74세)이다.
둘째 아들과 넷째(막내) 딸도 교수라고 한다.
현재는 100세가 넘은 나이에 지팡이조차도 사용하지 않고 활동할 정도로 건강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오히려 건강이 너무 나빠서 부모님이 20살 전에 죽을 것 같다고 예상할 정도로 허약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신앙을 갖게 되었고 그게 크리스천으로서의 첫출발이 되었다.
그 후 고령의 나이에도 기독교 도서들을 집필하였고, 유튜브에 기독교 관련 영상들이 굉장히 많으며 교회에 나와서 기독교 이론 강의를 한 영상들도 있다.
이렇게 평생을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살아왔으면서도, 2020년에는 『기독교, (아직) 희망이 있는가?』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내면서 개신교의 폐쇄성을 지적하고 교계의 자성을 촉구하는 등 건전한 내부 비판의식 또한 잃지 않고 있다.
나이가 나이이다보니 시인 윤동주를
"윤동주 형"
이라고 하면서
"그 형이 자신보다 공부는 못 했지만 꿈은 더 컸다"
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기도 하고, 독립운동가 이범석 이야기를 그 시절이라고 하기도 했으며, 해방이 되기 거의 10년 전에 운명한 도산 안창호의 설교를 고등학생 나이에 들었다고 하는 등 2020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제법 신기한 이야기들이다.
이쯤되면 살아있는 1900년대 한국현대사의 산 증인이다.
김일성과 소학교(창덕학교) 선후배 관계이다.
창덕학교는 평안남도 대동군 용산면 하리 칠골에 있던 기독교계 학교였는데, 김일성의 외조부 강돈욱 목사가 학교 설립자 중 한 명이었고 교장을 지낸 바도 있다.
1912년생인 김일성은 외가와 인연이 깊은 이곳 칠골의 창덕학교를 1923~25년에 다녔다고 한다.
김형석은 원래 고향 송산리의 신망학교에 재학했으나, 이 학교는 4학년까지밖에 없어 1931~33년에 창덕학교에서 나머지 과정을 마치고 평양 숭실중학교로 진학했다.
다만 둘은 연배 차이가 있어 학창 시절에는 만나지 못했다가, 김일성이 1945년 해방 후에 귀국하자 친분이 있던 목사들이 열어준 환영회 자리에서 처음 만났다고 한다.
2021년 7월, 서울 소공동 더 플라자 호텔에서 1시간 30분 가량 강연하였다.
강연 내용은 삶을 살아오면서 느꼈던 나누고 싶은 교훈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장수의 습관 등이다.
“인생 황금기는 60~75세입니다”
102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강연 내용이다.
◐ 티비에 나오는 김형석씨 강의 모습을 보면서
"저분은 어떤 분일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티스토리에 김형석씨의 교육관에 대해서 쓴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그냥 연세드신 분이 좋은 이야기 쓰셨네?'
이 정도 였었다.
그런데 이번엔 인물이 궁금해졌다.
인물 탐구란을 만들어서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나무위키'에 나오는 내용을 캡춰했다.
내용을 쓰면서 경이로운 마음이 든다.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이겨 내었을까? "
"어떻게 저렇게 열심히 살 수가 있었을까?"
"저분의 인생 노하우는 무엇인가?"◑.

728x90
반응형
'인물 탐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우 오영수, 78세에 글로벌 스타 되다 (0) | 2022.01.11 |
---|---|
유럽에서는 교과서 나올 정도로 유명한데 정작 우리가 잘 몰랐던 한국인 (1) | 2021.12.19 |
천재 과학자 였던 여배우 (0) | 2021.11.25 |
102세 김형석 강연(21년 7월 8일) (3) | 2021.10.16 |
스티브 잡스 세상을 변화시킨 5가지 비결 (0) | 2021.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