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편지글

책을 보냈습니다.

by 영숙이 2021. 8. 30.
728x90
반응형

 

 

 

<책을 보냈습니다>

                                          이메일 보낸사람 HAKERNEO  2000.09.18 09:57 

 

 방금 책을 주문해서 보냈습니다.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은 처음이라 얼떨떨하게 주소, 이름 입력했는데,

 다 해 놓고 보니 형님 이름 곁에 선생님이란 단어를 빼먹었습니다.

 

 혹시 배달부가 받을 사람이 학생인지 선생님인지 몰라서 헤매지는 않을지 걱정입니다.

 

 내일쯤 도착할 것입니다.

 

 강원도 갔다가 어제 내려왔습니다.

 

 아직 쬐금 피곤이 덜 풀려서인지 종아리가 아픈데,

 주위를 둘러보니 할 일이 말도 못하게 널려있군요.

 

 이 방 저 방 껍데기 벗어놓은 것들 하며,

 집에 없던 며칠간  쌓인 빨래감들,

 빨리 쓸고 닦으라고 발바닥엔 뭐가 잔뜩 밟히네요.

 

 모여있는 쓰레기 처리해야지,

 은행도 가봐야 하고 시장도 보고 반찬도 좀 만들어야지...

 참 롬아빠가 시월 초에 내려오게 됐습니다.

 

 한 일년여 이 곳에서 근무하게 되었답니다.

 

 이제 한 삼년만에 한집에서 지지고 볶으며 함께 하는 생활이 전개될 찰나입니다.

 

 강아지가 똑바로 천장보고 누워자는 것 보셨습니까?

 

 그것도 팔베개 베고서요.

 

 어쩌면 개라는 족속이 그토록 무방비로 가슴과 배와 그 아래쪽을 다 드러내놓고 잘 수가 있는 건지...

 

 바로 똘삐(똘똘하면서 잘 삐진다고 똘삐래요.) 얘기랍니다.

 

 나는 못 키운다고 선언했고,

 또 좀 키우다가 두  손 들겠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온갖 역경을 딛고서 둘은 이제 똘똘 뭉쳐져서 떼놓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할 수 없이 키워야지요 뭐.
                                 
                                                 2000. 9. 18. 롬엄마 올림 

 

 

<나팔꽃이 피었습니다.>

                                      이메일주소 보낸사람 HAKERNEO  00.09.25 13:47 


 오늘은 드디어 나팔꽃을 보았다.

 아니, 알현했다고 해야 하나?

 

 언제나 잊어버리고 있다가 여덟시나 아홉시가 되어서 나가 보면 나팔꽃은 항상 시들해진 얼굴로 꽃잎을 닫아버리고 있었다.

 

 그래서 여태 한 번도 활짝 핀 나팔꽃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오늘은 여섯시 사십분 경,

 

 일어나자마자 거실문을 열었다.

 

 안팎의 기온차로 베란다 문은 뿌옇게 김이 서려있고 그 너머로 보이는 앞산은 안개로 점령 당했다.

 

 약수터를 지나 관리실 지붕 위에 앉아 있는 안개…

 

 눈을 거두어 베란다 안 왼쪽과 오른쪽을 살핀다.

 

 왼쪽 헌 쌀통 위의 큰 화분에서 선인장의 한 일파인,

 

 내가 이름을 모르는 키가 50cm 쯤 되는 식물 한 그루와 행운목 한 그루,

 

 또 우연히 씨앗이 떨어져 자라게 된 분꽃 한 그루와  함께 한 지붕 네 가족의 일원이 되어있는 나팔꽃 몇 줄기를 일별하니 아직 피려면 하루 이틀은 기다려야 할 봉오리 두어 개만 보인다.

 

 그리고 오른쪽.

 

 눈이 확 뜨인다.

 

 신비로운 푸른색에 보라를 살짝 섞어놓은 꽃.

 

 들릴 듯 말 듯 빰빠라 빰∼

 

 나팔소리가 울리고…

 

 만지면 찢어질 듯 엷은 꽃잎을 활짝 열어 수줍게 그러나 기품있게 말하는 꽃.

 

 당신은 행운아예요.

 

 내 얼굴을 봤으니.

 

 난 아무에게나 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죠.

 

 저 공주병!

 

 그러나 철없는 공주병이 조금도 밉지 않은 건…

 

 키 큰 홍콩야자나무를 휘감은 몸매는 실처럼 가녀리고,

 

 하트모양 이파리도 작고 앙증맞아 그 꽃 또한 작고 애달프기만 하다.

 

 밤새 피어있었을 분꽃잎들이 모두 입을 조글조글 오므리고 향기를 닫아건 아침.

 

 녹색만 무성한 베란다에 보석처럼 빛을 내뿜는 단 하나의 꽃.

 

 자신이 유일한 존재가 되는 이 순간을 기다려오기라도 한 것 처럼 밉지않은 오만을 한껏 부려보는 애련의 공주,

 

 나팔꽃.

 '두남'이란 이름이 정겹게 느껴져요.

 

 잡초에 섞여 맨드라미가 무성히 피어있을 것 같은 화단,

 

 손질 안된 학교 화단을 상상해 봅니다.

 

 아마도 틀렸겠지만.
 
                                                                          롬엄마 올림.

 

 

<제목없음>

                                이메일주소 펼치기 보낸사람 HAKERNEO 2000.10.02

 그것을 왜 도전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영적인 도전?

 

 글쎄요.

 

 그 책을 그렇게 굳이 도전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그 사람은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에 대해 나쁘다고 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다만 사람들이 자기 이익에 따라 아전인수격으로 잘못 이해하고 해석해 놓았다고 한 것 같은데 제 기억이 잘못된 것인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한다 라는 말이 생각나는군요.

 

 글쎄요.

 

 지금은 옆에 책도 없고,

 

 제 기억력이나 논리력이 별로 신통치 못해서 무슨 말씀은 못 드리겠습니다만,

 

 우리 모두 좀 더 넓은 마음을 갖자,

 

 믿음이나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배척하지 말고 타인의 생각이나 믿음을 존중해 주자,

 

 그 책을 읽고 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이런 마음의 세계도 있구나 라고 한 번쯤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보내드렸습니다.

 

 그 사람이 승려가 되었다 해서 예수님을 배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틀렸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이해하게 되고 믿음이 더 깊어졌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자신의 종교만이 옳고 다른 종교는 모두 아니라고 해석하는 사람들의 편협성이 싫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에 대해 좀 더 넓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나와 다른 남에 대해 이해하고 포용하며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저의 느낌과 생각을 반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저의 재주를 탓할 뿐이지요.  

 

 많이 답답하셨다고 했는데, 생각이 너무 다르다면 답답하실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좀 더 넓은 마음으로 읽어보면 그 다른 생각이 일치하는 지점을 만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