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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은퇴 후 만 3년 햇수로는 4년.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일요일처럼 느껴진다.
예전에는 일요일이면 모두들 모여 있어서 시끄러웠는데 지금은 조용하다는 게 다르다.
조용하다가 학교에서 수업 시작과 끝을 알리는 차임벨소리가 들리면 오늘이 일요일이 아니고 학교 가야 하는 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젊었을 때처럼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절약할 궁리는 안하지만 몸에 밴 습관이라서 절약을 쉽게 버리지는 못한다.
나쁜 건 아니지만 또 그렇게 칭찬 할만한 것도 아니다.
쓸 때 쓸 줄 모르는 것도 바보.
그렇지만 절약해야 함에도 제대로 절약이 안 되는 게 있다.
바로 시간이다.
젊었을 때는 늘 시간에 쫓기어서 어떻게 빨랑빨리 빨리 마치고 쉴까 궁리를 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하면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를 궁리한다.
젊은 시절에 그토록 있었으면 했던 시간 여유가 지금은 넘쳐 나서 어떻게 잘 보낼까를, 아름답게 체울까를.
결국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를 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결론.
그 다음은 어떻게 봉사를 하느냐.
정기적인 것에 매이는 건 22살 때부터 지금껏 해 왔으니까 그런 구속에서는 벗어나고 싶다.
그렇다고 일회성인것도 싫다.
이런 궁리 저런 궁리 끝에 필리핀 선교를 하고 계시는 선교사님에게 한국에서 넘쳐나는 재활용 옷을 보내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필리핀 단기 선교를 갔을 때 너무나 오랜 세월 입고 입어서 닳고 닳은 임부복을 입은 임산부에 대한 기억을 잊을 수가 없었다.
산속에 사는 부족 4~5세 아이들이 홀라당 벗고 손가락을 입에 물고 서 있었던 모습도 눈에 밟힌다.
되도록이면 어린이 옷이나 임부복 등등 더운 나라에서 입을 만한 면 종류 옷을 구입 해잘 세탁하여 깨끗이 다려 보내 봐야겠다.
한번 해보면 계속할런지 마는지 결론이 날 것.
또 한국어를 배울 만한 책도 챙겨서 보내야 하는데 필리핀 말로 된 한국어 책을 찾을 수 있을까?
그냥 한국어 책도 찾아 봐야겠다.
암만 생각해도 지금까지는 돈 번다고 애를 애를 썼으니까 이젠 어떻게 보람 있게 쓸까를 애를 애를 써봐야겠다.
오늘 엄마를 찾아가서 식료품을 사드리고 부페를 먹었다.
맛있게 드시는게 너무 감사했다.
친정에서 1972년 옥천 여자 중학교 제20회 앨범 , 1975년 충남여자고등학교 제5회 앨범, 1978년 대전간호전문학교 제36회 앨범을 찾아서 챙겼다.
고등학교 때 또순이가 썼던 시화 액자까지 보관하고 계신 친정 엄마.
집에 오면서 차에서 앨범을 들쳐 보니 새삼 감회가 새롭다.
세월 저편에 얼굴들이 따라 온다.
" 다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나! "
아마도 인터넷을 하고 있는 내 또래들도 몇몇은 있을 것이다.
집 가까이 오니 남편이 전화를 했다.
집에 도착할 때가 되었다 싶은 생각이 들었는지 어디냐고 묻는다.
동네에서 회식을 하고 마치는 시각이 되어, 이참 저 참 전화도 하고, 톡도 보내고, 부슬부슬 오는 비에 우산을 쓰고, 한잔 걸쳐 조금 갈지자 걸음을 하면서, 신호등 횡단보도를 건너 마중을 나왔다.
" 잘있었어요? 와우 배가 쏙 들어갔네요 멋있다 ~ "
또순이의 괜한 너스레와 별거 아닌 칭찬에 쑥스러워한다.
" 나보고 싶었어요? "
" 아니? 혼자 있으니까 편하기만 하던데? "
" 그래요? 다시 올라 가야겠네요? 정말 안 보고 싶었어요? "
" 아니 보고 싶었어. "
" 얼만큼? "
" 하늘 배 땅만큼 "
하늘 배 땅만큼은 신혼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레퍼토리다.
" 좋아요? "
" 응. "
" 얼만큼? "
" 하늘 배 땅만큼 "
한결같은 레파토리다.
" ㅎㅎㅎ"
이렇게 또 하루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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