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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붐 세대 탐구 생활/어린시절 이야기

또순이 어렸을 적에 44 - 초등학교 1학년에서 4학년까지

by 영숙이 2019.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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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초등학교 1학년에서 4학년 까지

          - < 2002년 4월 >  40대에 서화동우회 까페에 올렸던 글임

 

 

       초등학교 1학년 때 영동에 살고 있었는데,

       한 밤중에 부산하고 시끄러워서 자다 일어나니까

       또순이만 빼고 가족들이 옷을 갈아 입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디를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몇일 있다가 데리러 올테니까 학교 잘 다니고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비몽사몽 대답하고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 나니까 아무도 없고

       나 혼자만 방에 적막하게 누워 있는 것이었습니다.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좀 있으니까 옆 집에 사는 먼 고모벌 되는 친척이 밥을 가져 왔습니다.

       그 아줌마 말이 아버지가 교통 사고가 나서 온 가족이 그리로 가고,

       또순이는 학교에 다니니까 당분간 전학 갈 때 까지 아줌마가 밥해 주기로 하고

       여기 혼자서 지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단양 군청에 근무 하시던 아버지는 출장 다녀 오시다가

       버스가 산비탈을 굴러서 많은 사상자가 났고

       그 중에서 2명만 살아 남았는데 그 중 한 분 이셨다고 했습니다.

       교통 사고의 아수라장에서도 호적조사 원본을 품에 꼭 안고 계셔서

       (그 원본이 사라지면 산골짝 산골짝 마다 사시는 분들의 신원을 증명할 증명서가  없어지는거니까 )

       그만큼 중요한 서류였고 그일로 표창장까지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학교가 끝나고 나면,

      또순이는 엄마가 타고 올 기차를 기다니느라 역전에 나갔습니다.

      바로 집 앞에 있는 영동역에 나가서 역무원 아저씨가 개찰 하는 거 구경하구 

       사람들 들어 가고 나가는거 구경하다가

          ' 오늘도 안오시는구! '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 오고는 하였습니다.

       어쨌든 오시면 기차 타고 오실테니까요.

 

 

       기차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단양에서 오는 기차는 저녁 무렵이면 다음 기차가 없었습니다.

       마지막 기차가 소리 지르면서 역 구내를 빠져 나가는 것을 바라 보다가

       석양이 뉘엿뉘엿 넘어 가는 거리를 걸어서

       역 앞에 있는 집에 돌아 오면

       옆집 아줌마가 저녁 밥을 가지고 오시는 거였습니다.

 

 

 

      혼자 먹고 나서 긴긴 여름 해에 하릴없이 앉아 있다가 강가로 나갔던 기억이 납니다.

      강가에 나가니 우리 반이었든거 같은데 어떤 예쁜 여자 애가 혼자 앉아 있는데

      말이 걸고 싶고 친구가 되고 싶어서

      무슨 말을 할까 궁리 하다가 말을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도 어제련듯,

      적막한 집안과

      그냥 혼자 있다는 생각.

      외로움의 느낌,

      그리고 붉은 석양과 강가 그 곳에 있었던 예쁜 여자 아이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루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엄마가 오셨다는 거였습니다.

      엄마가 예쁜 한복을 입고 머리도 높다랗게 올린 머리로

      멋쟁이 모습으로 학교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전학 간다는 거였습니다.

      엄마가 엄청 멋쟁이여서 디게 기분이 좋았고 으쓱 했습니다.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노래를 하라면서

      교탁 앞에 학생 책상이 하나 있었는데,

      책상 위에 또순이를 올려 놓고 노래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또순이는

         " 꽃밭에서 "

      란 노래를 하였습니다.

      지금도 그 가사가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아도 봉숭아도 ....."

 

 

 

     애들이 받아 쓰기 시험을 보는데 막 보여 주는 것 이었습니다.

     또순이도 쓸 줄 아는데도 ... 나중에 100점이라고 엄마에게 자랑하니까

        ' 애들이 보여 주던데 '

     하고 말하였습니다.

     사실은 또순이는 받아 쓰기 맨날 백점 받았는데 속상해서

     아니라고 애들이 처음 보여 준거구

     또순이는 맨날 백점 받았다고 항의하던 기억이 납니다.

     

     

 

 

    전학을 해서 옥천군 마암리에 있는 외갓집에 가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외갓집에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그리고 큰 이모와 외삼촌이 계셨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무렵부터 3학년 1학기까지 살았습니다.

    그때의 이야기들도 많군요.

    언제 기회 있으면 써보겠습니다.

 

 

   

     어찌됐던 3학년 때 가족들과 같이 옥천 읍내에서

     어떤 한옥 집 문간 방에 세들어 살다가

     군서 초등학교로 전학을 갔습니다. 

     읍내에 살다가 왔던 탓으로 얼굴이 하얗고

     거기에다가 하얀 브라우스를 입었으니까

     처음에는 다른 아이들고아 좀 차이가 있었을 것입니다.

 

   

 

     전학 왔다고 교실 증축하느라 칸막이를 한 옆 교실에서

     남자 애들이 칸막이 위로 얼굴을 내밀고 또순이를 구경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깐 또순이는 얼굴이 햇볕에 까맣게 그을린 보통 촌 아이가 되었습니다.

     어찌되었던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그곳에서 보냈으니까 쓸 말이 엄청 많겠죠?

     앞으로 시간이 있으면,  그리고 마음에 여유가 있으면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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